책-생각을 쫒는 눈 글 -夜想歌 1
“어떤 껍질도 맞지 않아.
벗고 벗는 탈피의 과정.
뱀이 허물을 벗고 또 벗듯이 제 몸뚱이를 가르고 쪼개어서
눈부신 하얀 살갗으로 달무리처럼 빛나고 있네.
헐벗어서 아름다운 나의 공중 정원이 여기에 있네”
반짝이는 먼 바다 위로 부서지고 파열하며 쏟아지는 태양빛을 응시하듯
해석을 거부하고 경직된 생각을 풀어주는 자유롭고 순진하고 때로는 거칠고 오만한 내 그림의 표면을 지켜 보는 것이 이제는 좋다.
그림은 무엇을 요구하지도 주장하지도 않으며 이해와 관념의 덫을 놓지 않는다.
물고기가 부레를 부풀리며 깊고 푸른 처음 만난 물 속을 유영하듯 나의 생각과 그림의 생각이 부딪히고 엉켜 화면 위에서 끌어당겨 지치도록 나뒹군다.
묘하고 흐릿해서 검은 눈동자로는 알아보기 어려운 어떤 지점에서 심장을 울려 증폭하는 생명의 인력이 서로를 끌어당긴다.
달의 운행에 이끌려 푸른 물결로 넘실거리는 대양의 파고.
나의 작업은 짓고 허물고 거듭 허무는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속 없는 모래알 장난 같은 진지한 놀이다.
시지프스의 돌.
생각 속의 여행.
순례자의 구도.
걷고 다시 걷는 그러나 뒤를 보지 않고 돌이키지도 않을 여정이다.
가슴 속 한 켠에 뿌리내린 결코 메워지지 않을 공허(空虛)의 바닥 그 심연에서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공중정원이 여기에 있다.
세상을 살다가 나 잠시 그 곳에서 머무름이 별스럽고 순하여서 좋다.
나의 생각이 붓의 끝을 타고 화면으로 옮아 번져간다. 처음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거기 스스로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천계(天界)-아름다운 물 속의 사막.
끊임없는 변화와 그 치열한 순간의 생명의 중심에 자리한 범접할 수 없는 영원한 절대적인 고요함이 대체 불가능한 지극한 아름다움의 한 모습이지 않을까?
결코 만질 수 없고 움켜잡아 삼킬 수 없는 영원한 현재의 푸르고 붉은 순간의 꽃.
착각과 환상.
진실과 환영.
동굴과 그림자.
절대적 아름다움은 미련없이 사라지는 불꽃같고 섬광 같은 찰나의 향수, 그 파동의 그윽한 여운에 있다.
생명도 이와 같으니…….
그 감각의 정원에 농밀하게 가득하여 설핏 바람 한 자락에 코끝을 휘감아 농락하는 달큰한 향기가 좋다.
천 개의 달-하늘로 자라나는 뿌리- 붉게 푸르게 몰락하는 덧없는 색의 아름다움.
하얀 나비 한 마리에 마음을 빼앗겨 아름다운 공중정원의 환영을 엿보고만
어쩌면 나는 뿌리를 품지 않고 꿈을 꾸는 어리석은 꿈꾸는 식물이던가?
-아름다운 공중정원-
달은 숨구멍이다.
푸른 달이 하나 둘 뜨면 청명한 산소가 공급된 듯 머리가 쉬어지고 더뎌지고 시원해진다.
화면에 뜬 푸른 달의 기운으로 푸른 꽃이 점점이 피어난다.
꽃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모든 피어나는 것은 꽃을 닮았다.
꽃잎이 나무가 되고 별이 되고 하늘이 되고 바람이 되고 물결이 되고 별이 되고 생각이 되고 화면 위에서 너울너울 하얀 나비처럼 춤을 춘다.
-달 홀맄lunatic-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내 안의 독을 다스리는 일이다.
내 안에 들어 있는 독이 점점 혈관을 타고 영혼을 잠식하려 할 때, 오만한 그녀의 힘을 빌어 얕게 자맥질치는 생의 맥박을 살려낸다.
작업 또한 일종의 독.
적당한 독이 또 다른 변종의 독을 해독하고.
시름으로 깊어진 사람의 남루한 지친 영혼을 부풀린다.
영혼의 깃털만큼 한숨에도 자칫 날아가 버릴 중력의 무게를 내려놓고
한 숨을 쉬다.
아주 깊은 숨.
이 땅에 붉은 네발을 딛고 거듭 닥쳐오는 삶이라는 놈을 살아가기 위해서......
-숨을 고르고 세상을 그리다-
푸른 해가 지고
붉은 달이 지고
파르라니 꽃잎이 지고
숱한 날이 지고
덧없이 숨이 지고
꿈결인 듯 비틀대는 바람인 듯
지척에서 객적은 한 척 세상이 훠이 지더라.
지고 지고 지고
떨어지는 무심한 빗줄기
찰랑이는 마음 밭고랑을 젖은 흙을 뱉어내고 파대고 두드려대며
그렇게 혼자 지더라.
지고 지고 지고
그렇게 한줌으로 무언가 훠이 지더라.
무심코 지나가는 짜고 비릿한 슬픔인가 보더라.
-어떤 슬픔에 관하여- 畵中獨白 -
봄밤이 깊다.
야심한 밤을 통과하고 몸과 그 한 몸을 지배하는 기를 소진한 작업 후에 탐하는 한 잔은 신의 음료 암브로시아를 훔쳐낸 것처럼 새끼발가락 끝 혈관까지 침범하여 뇌의 촉수를 도발한 듯 4월의 복사꽃 흐드러진 반란처럼 향기롭고 강렬하다.
세상 다른 곳에는 머물지 않는 허랑한 듯 떠도는 쉽게 잡히지 않는 도도한 이 향기.
예술이라…….
거대한 시간이란 무게에 짓눌린 차갑고 냉철한 사물과 빈틈없는 현존에 연금술사의 추를 흔들어서 냉각된 붉은 심장을 덥혀 숨을 부풀리고 움켜쥐는 환영의 술(術)!
지루하고 뜨듯한 무거운 현재를 비틀어 버리는 이 무모함이 좋다.
그리고 현재를 나르는 이 생각이란 놈이 지극히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생생한 현존의 즐거움!
비록 태양이 거듭 밝아올 때면 변덕스러운 야누스의 싸늘한 등을 보이고 날카로운 얼음파편처럼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서 세상의 계곡 틈새로 사라져 버릴지라도 …….
- 4월 봄날의 밤- 夜想別曲 -
화가는 <작품>이라는 주인의 거친 땅을 갈아 엎어 생명을 움틔워야만 하는 운명의 보이지 않는 끈에 결박된 포로다.
스스로의 아킬레스에 황금빛 올무를 채우고 빛을 쏘아보다 눈이 먼 어리석고 순진한 자들이 사는 척박하고 아름다운 영원의 유토피아-Utopia.
눈 먼 자들의 도시.
휴식이 거세당한 푸른 별을 품은 불멸의 낙원(樂園)
나 오늘 그 곳에서 빛을 잃고
길을 잃다.
참으로 짙은 어둠 깊은 밤이다.
머리 속만 속 없이 말갛게 개어오고 저 멀리 안개 우주 두터운 층 속으로 엷게 흩어지며 까마귀 떼처럼 끼룩대는 가뭇한 심장의 고동……
비상 혹은 추락.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
확고하고 거대한 인식의 녹슨 청동빛 빗장을 부수고 그림과 생각을 정면으로 마주 한다는 것.
세상이 눈치 못 챈 무한 궤도를 떠도는 미확인 혹성 같은 돌연변이 바이러스와의 충돌.
염기서열에 섬세하고 꼬질하게 꼬여 흥건히 담금질된 붉은 피의 지워지지 않을 인장.
Toxic & Sweet lullaby.
치명적이고 아주 달콤한 그녀의 자장가.
-치명적이고 아주 달콤한 그녀의 자장가-Toxic-
생각을 익히고 있다.
한 여름 폭염에서 튕겨 나온 푸른 색의 파편들이 바닥에 흩어져서 가벼운 현기증처럼 어지럽다. 나는 내 구속된 영혼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림으로 한 바탕 모든 지상 거류민의 그 단 하나뿐인 자기 앞의 생을 저지르고 있다.
빛의 잔상, 생각의 잔상, 잔상의 잔상.
결국엔 가차없이 쓰레기통 속에 처박혀질 어제 이미 죽은 소음, 공전하는 메아리일지도 모른다.
곧 억지로 익혀서 썩혀 내팽개쳐지던지, 혹은 우주의 우연의 주사위에 요행히 멋지게 굴려진다면 제법 맛있게 익을 것이다.
날 것과 익은 것. 그리고 썩은 것.
맛이란 혀의 돌기를 포함한 뉴우런과 뇌에 지배당한 신경세포 그물들의 감각 경험치 아니던가. 새로운 맛의 출현 – 혹은 조악하고 수상한 변주.
거듭 날 서고 낯 선 생각들을 화면 위에 뿌려놓고,
묵은 생각들을 털어내고 울림을 울릴 수 있는 텅 빈 가슴 공명통 하나만 호기롭게 들고서, 넘실대며 밀려오는 한 물결을 고른다.
그러다 보면 생의 모퉁이에서‘삶은 신의 장난이다!’라는 생각과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순간이 가끔씩 있다.
상호이해라는 시약의 리트머스지 위에서 확연히 <섭리-혹은-장난>으로 변별당해 후다닥 게걸스럽게 삼켜 버려지는 정체.
본체는 거대한 공룡 같은 빙하에 갇혀 얼어붙어서 소문에 의해 짐작되고 떠돌 뿐 저만치 세상 밖에 있다.
결코 범접을 허락하지 않는 상상과 환상의 부재의 섬-네버랜드(Never Land)인 것이다.
다시 한 번!
바람자락 한 결에 여름 창문으로 날아든 무당벌레 한 마리처럼 생각이 슬그머니 도발된파도의 한 끝자락에 올라 덮쳐와서 부풀고, 광폭하고 시원한 포말로 거칠게 깨어진다.
두 팔을 펼쳐 창공을 가르는 새의 비상처럼 두려움 없이 그 물결을 타라!
여름 한낮이 한없이 길던 유년시절 혀끝에 달콤하게 감겨와 목구멍을 펑 뚫는 처음 핥아먹은 짜릿한 박하사탕 같은 생경한 시원함.
그것이 두려움 없는 <쾌>의 즐거운 맛이다.
-익혀야 맛있는 것과 두려움 없는 <쾌>의 즐거운 맛에 관한 생각-
걸어가야 보이는 길
결국 공중에 열린 길이던가.
걸음 발 끝 앞에 길이 열리고 한치 앞은 천길 낭떠러지구나.
구름 위를 유유히 걸어가는 자!
얼마나 속없고 무모한 자던가.
안개의 겹겹 친 베일을 두 손으로 흩으며 새벽 여명을 뚫다.
색(色)이 다하고 다하니 다시 색이다.
-
여름 밤을 걷다-
붉은 색은 무엇인가!
지금, 뜨겁게 소용돌이치는 정신의 한 울혈된 상태를 잡아내고 있다.
차갑고 붉은 뜨거움.
해가 뜨고 달이 차고 해가 저물고 달이 이지러지고.
말미암아 우주가 돈다.
시간과 공간이 무언가에 이끌려서 거미줄처럼 날줄과 씨줄로 뒤엉킨다.
아름답다.
나의 화면에는 지속적인 교차가 일어난다.
계속적인 현재가 어딘가에서 날아 온 모르쓰 부호처럼 웽웽대며 존재를 지치도록 타전한다.
붓을 든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 짐작하고 쫓는 것으로 족하다.
그 교차된 시.공의 웅덩이에서 생각이 움트고 생명이 꿈틀거리고 풀이 나고 해가 튀어 오르고 달이 낙하하고 홍염의 붉은 공간으로 물들고 녹슨 태양빛처럼 녹아 내린다.
새로운 출현이다. 공간의 기원!
붓끝에서 주술처럼 화면 위로 쏟아져서 흩어지고, 도마뱀처럼 화면 속으로 꼬리를 끊어내고 달아나는 충동적이고 즉물적인 점과 선과 색.
그 흔적들을 빠르게 쫓아가며 막 튕겨 오른 이유 모를 단호한 점과 선. 형으로 인해 뇌와 눈동자가 요동치며 시신경을 조여온다.
점이 선이 되고 형이 되고 안이 되고 밖이 되고 서로의 간섭-길항-충돌로 인해 거침없이 변해가고 관계되어지고 말미암아 파장과 방향을 바꾼다.
번져가며 고착되어지고 스스로 단호하고 거침없는 떠돌이 혹성 같은 숨쉬는 내 그림을 바라보며 가끔씩 생각한다.
생명이 오는 길이 이와 같지 않을까?
생명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명은 그 존재함으로 이미 어떤 의미로 가득하다. 영리하고 단단한 의미로 물든 단어로 치환 불가능한 생명에 가득한 신비로운 힘의 無의미!
의미 너머의 어떤‘영원한 찰나’의 모순된 그것이다.
나의 그림은 感으로나 파악 가능한 순간의 그 한 단면을 싹둑 끊어보는 느낌이다.
형상과 색채의 교감과 희락의 장난질 속에서 어딘가에 나뒹굴고 있는 태고의 비밀을 움켜쥔 고대의 파편 한 조각을 마주친 듯 화면이 나를, 내 눈과 손을 재촉하고 감성을 촉발하고 심장을 두들기고 스스로 점등된다.
나는 오래된 무언가를 시간을 들여 들여다 보는 것이 참 좋다.
사람이 관계한 것보다 사람 또한 돌멩이처럼 그것으로 관계 되어진 그런 시간성의 물질, 혹은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을 놀이 삼아 가늠해 보기를 좋아한다.
어느덧 나의 그림이 물이 스며들듯 내 생각을 닮아가고 있다.
붉게 화면을 점령하고 심장으로 밀려오는 붉은 기운이 서늘하게 일상으로 무뎌진 정신을 깨운다.
그림은 나의 정신을 깨우고 별안간 세워 일으키는 특별한 그 무엇이다.
그 느낌이 감각을 자극하고 맛있다.
스스로 제 존재를 산다.
내가 이 일을 즐거워하고 거듭 일어서고 몰두하는 또 한가지 이유다.
습관에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아름답고 추한 카멜레온을 가슴 속에 한 마리 품어두는 이유.
생명이 거듭나고 알을 깨고 증폭되고 피어나고 합(合)한다.
우주다.
자연이다.
나다.
심장과 손을 지배하는 감각의 촉수가 피와 살을 덥혀 생명을 끓어 올려서 세상을 사는 한 객체인 나라는 변별된 종을 통해 퍼트리는 노래.
내가 만난 예술.
내가 걷는 예술.
그 생각의 품이 경계가 없고 격의도 없고 가늠할 수가 없으나 넉넉해서 좋다.
획책하지 않고 요동치지 않아서 좋다
수 많은 설과 괘변과 잣대가 줄을 서고 탑을 쌓고 무법 종횡 하는 이 세상에서 우매한 열성으로 선택되어질지라도.
-공간의 기원-
가고 가고 가고 가고
가고
가고
가고
거듭 가라!
화면 속에서 태어나는 에너지를 묵도하고 풀무질하는 것.
세상에 없는 새로운 느낌.
생각을 시작하고 색과 점 선의 흩어짐으로 약동하고 무한한 팽창을 한다.
제 리듬으로 증식 팽창하고 치열하게 엉겨 다투고 속없이 살을 부비고 엉키는 모습에 내 머리가 비워지고 가슴이 깨어난다.
그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 좋다.
세상에 제 힘으로 홀로 드러나는 것들의 타협하지 않는 강인함과 대범한 기개가 좋다.
드러내고 미련없이 사라지고 혹은 거침없이 존재를 울리는 그 방식이 좋다.
어느덧 자연을 닮아있다.
-자연을 닮다-
나는 그림으로 선동질하거나 당파질하거나 학당질하며 사람의 이름에 분가루로 회칠하는 판놀음을 보는 것을 혐오한다. Ism은 훗날 사가들이 역사와 그 시간에 갈피를 꽂고 의미의 축을 세우기 위함이지 어디서 퍼다 지은 지 모를 알곡으로 지은 설은 밥과 거친 포획물에 둘러앉아 삼지창을 꽂는 싸구려 잔칫상에 배를 채우는 졸렬한 승자독식의 동물의 사육제-카니발은 아니지 않는가?
세상을 둘러보니 예술은 귀하고 맥빠진 거품 가득한 싸구려 축제는 도처에 성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예술 멸종시대를 구제하는 것은 영리하고 튼튼한 공모된 결탁의 화려한 변종의 예술인가!
몰락하는 시대의 이성과 감성.
화학 첨가물로 뒤범벅된 뜨거운 영혼을 제거한 유통기한에 소모되고 파기될 상품들.
공모되고 공인되어 이미 시한부로 내재된 태생적인 암묵적 죽음.
집단자살묵인 방조-조작된 은밀한 타살-예술 살인자의 건강법.
-예술 살인자의 건강법-
나는 직선으로 마음에 들어오는 거침없는 투명함이 좋다.
여행자의 지친 발과 마음을 잠시 세우는 생생한 문장 부호 같은 그런 느낌이 좋다.
음악이 귓가에 울려 마음 속 우물 깊은 곳까지 빛처럼 꽂혀 들어와서 울려 퍼지듯, 그림 또한 그런 것이 좋다.
푸른 물속 천 갈래 푸른 물결 사이로 푸른 뼈가 자라난다.
뢴트겐 사진 같다.
전설과 신화 속 그들처럼.
우리가 우주라 부르는 쌀 한 톨에 가득한 생명의 얽힘처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딱딱한 내 껍질의 내피와 외피를 눈을 감고 더듬어 보는 작업.
무엇이 그 속에 있을까?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당신들이 이미 퇴화시켜 봉인한 차가운 깊은 곳에 던져버린 그것일지도 모른다.
손가락 끝 지문에 아로새겨진 희미한 사람의 기억.
푸쉬케의 거울.
낯선 듯 아련한 새벽녘 어스름이 터오는 생을 밝히는 따뜻한 기운.
이 진화의 게임의 법칙은 없다.
거듭되는 돌연변이
감각적인 예민한 촉수.
부풀어 오르는 심장
정수리를 붉게 물들이는 뻐근한 쾌.
잔잔히 빠져드는 생각 속의 락 (樂)
저기 멀리 아른대는 손끝에 닿을듯한 영원한 환상의 섬.
-환상의 섬에 법칙은 없다-
꿈을 꿀 것인가? 부술 것인가?
답은 없다. 선택의 문제다. 모든 생의 늪은 여기서 출발한다.
꿈꾸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있을 뿐.
늪을 안는 자와 늪에 빠지는 자가 있을 뿐이다.
-꿈꾸는 늪-
예술…전적으로 제 시대이거나 제 삶을 온전하게 껴안은 한 인간의 몸과 혼을 섞어서 빅뱅처럼 절묘한 우연으로 태어나는 그것!
중요한 순간은 절대적이고 뜬금없는 우연한 그 순간의 새로움을 낚아채는 날카롭고 굶주린 서슬 푸른 눈동자에 있다.
아직도 낭만적인 허세로 부푼 마음이 주절이는 변명이려니..
-예술 찬미론자의 변辯-
내 그림은 하얀 나비 팔랑거리는 날개짓, 나풀대는 바람 한결에도 흔들리고 엉켜지는데, 내가 묵직한 생각이라는 돌을 얹어 놓았구나.
중력을 걷어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마음은 태생이 춤을 추며 떠돈다.
유리알 유희.
-하얀 나비_
빗방울처럼 문득 어디선가 툭툭 떨어져서 망막에 흩어지는 선율이 좋다.
처마끝에 굴절되고 투명하게 튕겨대는 소리가 좋다.
물방울이 나뭇잎을 두들기고 오선 위에 대롱대롱 굴러다닌다.
말을 없애고 소리를 없애고 비로소 울려 퍼져오는 순하고 청명한 멜로디에 낮에 만난 멀미나는 잡스러운 생각이 쉬어진다.
생각이라…….
뭐 별스런 것도 아닌 게지.
보이지 않는 이 노래를 종일 흥얼대고 있다.
빗방울 방울방울 쉬지 않고 떨어지는 오후.
-빗방울 변주곡_
수수께끼는 답이 없는 질문이다.
답이란 없다
거듭 묻고 묻는 과정 속에서 엉겅퀴처럼 쑥쑥 자라나고 깊어질 뿐이다.
답이란 한낱 동네 끄트머리에서 동강난 막다른 골목이다.
곧 한숨에 날아가버릴 정수리를 옭아맨 간지러운 재채기이다.
수수께끼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아득한 섬이다.
-수수께끼는 답이 없다 inigma-
소음을 걷어내고 예리하게 주파수를 맞추면 한결에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이 노래.
난 석양이 좋다.
석양을 잡아 놓는 세상의 특별한 한가지 방법.
더욱 붉다.
나의 그림은 현상의 행간을 훔치는 그림이다.
언젠가부터 신의 섭리를 흉내 내고 훔치고 있다.
내 안에 사막의 고독한 선인장이 밤 도둑처럼 날마다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하늘 가장자리에 손톱에도 가려질 무심한 달 한 조각이 태고 적부터 그 날처럼 금빛으로 일렁이고 있다.
-고독한 선인장-
지금 하나의 세상이 태어난다.
신 우주이다.
우주의 법칙은 거듭 옮아가는 생성의 배꼽 속에 있다.
에너지가 소진되면 잠시 멸滅의 뒤로 고단한 반쪽 날개쭉지를 감춰버리는.
당신이 문득 세상에 씨앗으로 날아와서 피고 지는 이유.
풀이 돋는다.
그리고 하늘에 두 개의 달이 서로 물끄러미 박혀있다.
달과 그의 수줍은 그림자.
-씨앗, 달 그리고 그림자-
버려야 한다….
마음을……생각을…… 무게를…
내려놓고…….
감각으로…….
깃털의 한없이 부드러운 촉각으로…
-비행의 조건-
저기 춤추는 별.
이미 시간 속으로 사라진 부재하는 슬픈 혹성의 빛이 환영으로 나의 가슴을 아릿하게 파고든다.
차가운 가을밤, 새벽의 캄캄한 이국의 검은 하늘 위로 번져오는 옅게 파르라니 떨려오는 無心한 파장.
이유 없이 별들이 태어나고 이유 없이 별들이 죽는다.
이유의 있고 없음의 이유.
보이고 보이지 않는 것의 보이지 않는 이유.
저기서 명멸하는 춤추는 별은
이미 몰락한 고대 왕조의 황금빛 왕관에 깃든 녹슨 기억처럼
한줌에 사라질 얇은 껍질로 빈 몸뚱이를 벗어놓고
우주같이 거대한 뇌의 심연으로 사라졌다.
저기 춤추는 별이
제 스스로가 품은 이유로 영원히 멈추지 않을 춤을 춘다.
<저기 춤추는 별>
어느 날 난 무심코 알았거든.
열어둔 창문 틈으로 파고들어 내 코끝을 찡하게 휘감는 살풋한 바람 한 자락에 세상이 바뀌더군.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나의 살갗 속 어딘가 감각의 한 모퉁이에는 선홍빛 아가미가 숨쉬고 있어. 물살을 가르며 세상을 유영하다가도 아가미 한 쪽이 불현듯 충혈되어 붉게 물들어 오면 부레 가득 숨을 쉬어 포말을 일으켜서 허연 뱃속을 부풀려야 비로소 거친 숨을 재우고 평온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을.
난 무심코 알았거든.
내 안에는 나조차 돌보지 않는 돌볼 수 없는 사막이 있어 그곳에서 돋아나는 초록빛 선인장처럼 증식하고 분열하는 감각들이 혹성처럼 자라나고 있어.
가끔씩 저 멀리 일렁이는 화산을 바라보듯 내처 두려운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보지 않으면 불안이라는 존재의 촉수로 연체동물처럼 꿈틀대고 나를 거듭 도발하고 충동해 오거든.
신화 속 시지프스의 돌이지.
천형의 돌이거나 혹자는 운명의 돌!
그런데 무시하고 담아두고 묵묵히 거기 버려두기에는 생각보다 꽤나 묵직하고 어지럽고 강렬해서 가끔씩 어리숙한 의식이 잠식당해 미로의 숲을 맞닥뜨린 듯 길을 잃곤 하지.
잠깐만!
아릿한 상실감이 검게 삽시간에 집채만한 파도가 되어 의식을 덮쳐온다.
세상을 덮어버리고 점멸시켜 버리기에 충분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존재의 불안.
미지(未知)의 구름.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이미 견고하게 사슬에 얽혀서 고착된 명제 혹은 진실이란 그 물길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참으로 허술한 토대 아래 연약한 뿌리조차 내리지 못하고 연체동물마냥 부유하고 있다.
사람이 사는 곳에 한자리를 얻어 갖고 불현듯 그 한 자리가 새롭다.
값없이 받은 생명.
값없이 받은 먼저 있었던 자들의 유산.
길에서 길을 묻다.
불멸의 세계.
음악은 어느 면에서는 절대순수 영역을 지닌 유일한 예술인 것 같다.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고 해석을 반대하는.
의미를 붙이고 의미를 캐내는 작업.
과연 그 의미라는 것은 얼마만큼의 어떤 종류의 의미를 지녔는가!
결국 모든 것은 소통을 위한 또 하나의 설명일 뿐이고 의미의 본체는 정체를 파악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날이 풀이면 녹아 떨어져 나갈 빙산의 일각!
그건 결국 신의 영역에 속한 것이고 사람은 호기심을 충족하고 불안을 증식하는 정체를 속이기 위해서 판도라의 상자를 아주 잠깐 엿볼 뿐이다.
향기 있는 것들이 지니는 치유의 능력과 삭지 않고 더해지는 매력 속에 자유가 있다.
나의 삶 가운데도 특별한 향기가 깃들어지길…… .
사람은 무엇으로 무엇을 사는가?
생각하는 그곳에 당신이 있다.
일상의 괘도 바로 옆에서 또 다른 레일 위를 현란하게 질주하는 환영의 변주.
끊임없이 교교히 현재를 밀쳐내고 달음질 치는 생각의 질주.
숨을 고르고
지금, 그것을 쫓고 있다.
-생각 쫓기
마일즈 데이비스의 낮고 깊이 가라앉은 연주를 듣고 있다.
Kind of Blue 그리고 All Blues.
작업을 펼쳐놓고 흐트러진 마음을 내려놓고 선율에 마음을 얹어서 가슴을 해방시키는 시간…….
정말 오랜만이다. 나와 마주 하는 시간. 나를 잊어 버리는 시간. 작업의 묘미는 여기 있는 게 아닐까?
참 아름다운 소리다. 한껏 가라앉은 마음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라와서 가벼워지고 있다. 조금 전까지 바닥에 펼쳐놓고 물감을 흐트러뜨린 노란색 화면이 원래부터 그렇게 거기에 살고 있었던 생물처럼 창백하게 흥건한 물기를 뱉어내고 서서히 고착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잠 속으로 달아난 시간.
짙은 어둠에 잠식당한 남겨진 도쿄의 밤. 심장이 물들지 않는 타인의 땅.
창 밖으로 점점이 우주의 별 빛처럼 박힌 희미한 불빛이 우울하고 아름다운 거대한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내 안에 자리한 블루. 이제 밤이 깊고 마일즈 데이비스의 연주를 따라 밤의 더욱 깊은 곳으로 내려가서 낮 동안 쌓아둔 상념들을 더 이상 존재치 않을 시간 속으로 밀어낸다.
비어진 마음.
Blue in my mind.
생의 부활.
가득 찼던 마음들을 검은 땅 속에 묻고 넘실대는 푸른 파도 한 자락을 탄다.
차갑고 아름다운 영원한Blue.
안식의 푸른 땅.
<Blue in my mind>